터키 영화 ”블러드 마운틴“이 있습니다. 이슬람 무장단체인 IS를 막지 못하면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결국 7명의 특수부대원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IS와 싸우게 되는데 상대는 200여명입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한 여인이 자신도 싸우겠다고 합니다. 중령이 여성에게 돌아가라고 할 때 그녀는 말합니다. “전쟁이 전사를 만드는 법이에요...“ 그녀는 IS에 참수당할 순간에 특수부대 도움으로 살아났고 이제 전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상황을 영적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용사로 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여동생 마르다에게 묻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무덤에 죽어있는 나사로가 살아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나사로는 우리들일수 있습니다. 나사로 이름을 헬라어로 ”라자로스“라고 합니다. 의미는 “하나님이 도우신다.”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나사로입니다. 그가 살던 마을 베다니는 “슬픔, 괴로움의 집”을 의미합니다. 베다니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믿으면 다시 살아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예수님은 하나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납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예수님 외에도 행악자 두명이 더 있습니다. 두 행악자는 자기 원대로 살다 십자가에 달립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살다가 십자가에 달립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산 예수님을 다시 살립니다. 누구나 십자가를 경험합니다. 자기 원대로 살다 만나는 것과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서 만나는 십자가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붙들고 살면 다시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면 다시 살아남을 믿어야 합니다.
- 서헌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