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특별한 경험이 생각납니다. 시골 논에 어른 5명 정도 오셔서 풀을 맨 적이 있습니다. 한두룩 씩 자리를 잡고 풀을 매면 나는 그 풀을 밖으로 날랐습니다. 그 날 일하는 나를 보고 모두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헌주, 일 잘한다. 정말 일 잘한다.”
나는 그 날 일후 동네에서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일인데 지금도 기억날 만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나는 그때 왜 열심히 일을 했지. 왜 그 일이 힘들어도 신이 났지.. 초등학생인 나에게 어떻게 그런 열심과 능력이 나왔지.”
그때 내가 품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일은 나에게 풀 나르기 경기였습니다. 어머니들이 풀을 매면 나는 그분들에게 지기 싫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그때 품은 승부욕은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어떤 힘과 에너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나에게 지난주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신년에 기도하면서 교회 3층을 주거 공간으로 만들어 세를 주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 때문에 머뭇거리는데 지인 목사님이 도와주시겠다며 빨리 일을 시작하라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3층 인테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았고 몸은 피곤했습니다.
낮에 일을 하고 새벽 예배를 드리는데 기도할 힘도 없었습니다.
지쳐있는 나를 보면서 함께 예배드리는 권사님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권사님^^ 낮에 일하시고 새벽예배 드리시니까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새벽을 깨우시는 걸 보면 대단하셔요.” 그때 권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당해야지요.”
짧은 한마디인데 이 말은 나의 영혼에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힘들 때 감당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힘과 용기를 주시지만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면 이유와 핑계를 주십니다. 몸이 힘듭니다. 그래도 감당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 말씀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기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일을 감당하겠다는 바울의 각오입니다. 바울은 감당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감당하려고 하면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피하려고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이유와 핑계가 열립니다.
삶은 능력 주시는 예수 안에서 상황을 감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 도우시고 여기서 삶은 성장합니다.
- 서헌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