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일반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CCM입니다. 하지만 나는 청년시절에 이 찬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면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을 때 실망하고 갈등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내 안에 사랑할 힘이 빈약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도리어 실망하고 상처받는 나를 만나곤 합니다. 내가 하는 사랑의 수고에는 항상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 기대는 채워지지 않을 때 나의 사랑열정은 식어가곤 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바울은 세상을 넉넉히 이긴다고 할 때 그 힘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그 사랑은 사람이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9)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보호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 사랑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 마음을 느낄 때 우리는 세상이 줄수 없는 자존감을 누립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누릴 때 바울처럼 세상을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사랑은 연약하지만 주님 사랑은 죽음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 사랑을 경험하면 은혜와 감격으로 모든 상황을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 서헌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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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MxaiAFfmCs 연약한 내가 이기는 삶을 원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