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과 목요일은 쓰레기를 내놓은 날입니다. 그럼 수거하시는 분들이 쓰레기를 가져가는데 지난 주 목요일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사정이 있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에는 마음이 서운했습니다. 다른 집 쓰레기는 모두 가져갔는데 우리 집 쓰레기만 가져가지 않은 겁니다.
그 다음 날 토요일에 김 권사님께서 교회 앞 쓰레기를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네요...” 이건 버린게 아니라 내가 가져가라고 내 놓은 거라고 하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쓰레기 봉투에 버리셔야지요...“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까 쓰레기 봉투와 비슷하긴 한데 규격 봉투가 아닙니다. “아 그래서 안 가져 갔구나... 내가 실수했는데... 괜히 서운해 했네...”
여기서 떠오른 것이 속 마음입니다. 가져가지 못하는 그분들의 속마음도 서운... 가져가지 않아서 오해하는 내 속마음도 서운...
그런데 속마음을 알고 나니까 내 마음은 이렇게 바뀝니다. "미안하네... 죄송"
어느 날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녀를 개에 비유하십니다. 여인은 실망하고 상처를 받을 법 합니다. “나를 개취급하네...”
예수님의 속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딸이 귀신들려 힘들지... 그런데 이방인으로 네 안에 쌓인 개에 대한 상처가 있구나..."
예수님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시고자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십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을 개로 비유하시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부스러기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예수님은 그녀의 말을 들으시고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귀신들인 딸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회복이 있습니다. 하나는 귀신들린 딸의 회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인의 회복입니다. 그녀는 이방인으로 유대인에게 개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상처는 예수님을 통해서 딸의 병을 고치는 추억이 됩니다. 상처가 추억되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 믿음이 예수를 경험할 때 상처는 추억이 되고 통증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근육이 됩니다.
관련 말씀
속마음 통증에서 경험하는 은혜 https://youtu.be/4Fbjscnkwb0
- 서헌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