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개척하고 초창기에 주보를 만들 때가 생각납니다. 주일 설교 하나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주일오후, 수요일 설교까지 본문을 주보에 실어야 했습니다. 본문을 정하고 또 글을 실어야 하는데 주보를 만들면서 때로는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그때는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주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년이 지나고 지금은 나름 적응했습니다. 예전보다는 주보를 쉽게 만듭니다.
새벽 예배를 드릴 때도 경험은 비슷합니다. 어느 본문으로 설교할 것인가? 무슨 찬양을 할 것인가? 매일 성경 본문을 정하고 또 찬양곡을 선정하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예배가 편해졌습니다. 성경을 순서대로 보면서 말씀을 전하고 찬송가도 순서대로 부릅니다. 처음에는 찬송가를 몰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덧 전곡을 10번 이상 부르면서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모든 일은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처음에는 힘들어도 적응하면 쉬워집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말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37:11)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이길 때 오는 열매입니다. 화평도 전쟁에서 이길 때 오는 선물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그럼 온유한 자는 영적 전쟁에서 이긴다고 할수 있습니다.
온유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프라우스 (praus)입니다. "통제되고 길들여진 힘"을 의미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길들여진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쉼은 주님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음 구절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은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멍에를 메고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멍에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럼 십자가를 통해서 온유를 배우면 쉼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온유는 십자가를 통해서 길들여지는 삶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영적 전쟁을 경험합니다. 여기에는 이런 갈등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길들여질 것인가?.아니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길들여질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통해서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를 제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세상에 길들여지면 그는 무리가 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길등여져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면 말씀은 우리를 인도하고 영혼은 주님 주시는 쉼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힘은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온유에서 나옵니다.
- 서헌주 목사




